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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억 팔아 몽땅 박물관에 쏟아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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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동양문화박물관장 권영두씨
"무엇이 관장님을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일에 미치게 만들었습니까?"
"팔자 소관이죠"
얼마 전 권영두 관장이 운영하는 사설 박물관을 찾았다. 북촌의 전통 한옥마을길 양편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다. 며칠 전 엄청난 눈이 내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웠던 탓이다.
택시에서 내려 백여 미터의 한옥 마을길을 오르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세 팀인데 전부 일본인 관광객들뿐이었다. 허긴 사람들이 일터에서 일하는 오후 두 시쯤이다. 한 손에 관광안내 책자를 들고 책 내용을 확인하며 기와집 대문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니 내가 일본에서 기웃거리던 생각이 나 피식 웃음이 난다.
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개량 한복에 맘씨 좋은 느낌의 주인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짧은 머리에 수염을 덜 깎은 듯한 평범한 모습, 시골마을 이장같은 그가 이 집 주인인 권영두씨다.
권영두! 그의 전직은 건설업자다. 대학생 시절부터 집장사를 해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공예품 수집하는데서 욕구불만을 풀었다. 돈을 벌면서 유물수집에 나섰고 벌써 25년이 됐다.
권 관장은 최근 강동에 있던 사옥을 200억원에 팔고 이 돈을 몽땅 박물관에 쏟아 부었다. 그는 돈만 생기면 아파트 두 채에 해당하는 돈을 들고 인사동을 돌아다녔다. 건설업을 하면서도 정신은 문화재에 둔 셈이다.
- 언제부터 건설업을 하셨고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버님이 건설업을 하셔서 일찍부터 건설에 눈에 떠 대학시절에 집을 지어 팔았고 민속학과 공예품을 전공했습니다. 계기는 아마 팔자 소관이랄까요? 충북 음성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 옛것에 대한 애틋한 정이 살아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가 이렇게 문화에 심취한 데는 전통에 대한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상표나 우표 모으기 과제를 내줘 모으기 시작한 우표가 수천장이나 된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 혼수품을 박물관에 전시했다. 양촌 권근의 18대 후손인 그는 양촌의 효행록과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등 조선 선비들의 명필 서간들도 전시한다.
박물관은 맹사성 집터이다. 문화박물관 자리를 보러 다니던 중 우연히 이 집을 보았고 둘러보니 서울의 사방이 다 보였다. 부동산업계에서 달라는 대로 40억 원을 다 주고 3년 동안 리모델링했다. 그는 자기 기술을 이용해 모든 것을 직접 했다. 자료수집 30년, 민속품 수집 40년 동안의 열정이 모두 이 박물관에 녹아들었다.
"순수사립박물관이 2대가 이어진 것이 없다"는 그는 지속가능한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체험을 통해 뭔가 해보고 상품을 가져가면 만족해하기 때문에 민화나 목공예를 직접 그려보거나 만드는 공방체험을 준비 중이다. 공방은 청소년들에게 인성교육도 되고 성취감을 준다. 두달만에 2백명의 청소년에게 좌우명을 써줬다.
선비체험 및 예절교육, 민화그리기, 목공예, 천연염색, 도예, 전각, 서각체험, 다도체험, 전통음식, 전통놀이, 서울 도성 및 성문탐방을 계획 중이다. 그는 전통문화체험교실을 마련하기 위해 박물관 앞 5층 건물을 샀고, 바로 옆 20평 건물에서는 서당을 운영할 예정이다.
"인사동에서 작가가 그린 민화부채 하나를 15~20만원에 파는데 일반 관광객은 못삽니다. 2~3만원이 적정선인데 그런 것은 모두 중국산입니다. 그래서 인사동은 망가지고 먹자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정년을 앞둔 분들을 활용해 공예품을 만들어 팔 예정입니다. 은퇴한 분들이니까 큰돈을 안 드려도 되고 가격 경쟁력도 생기죠."
문화를 디자인하고 상품화하라
그의 모토는 "문화를 디자인하고 상품화 하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모릅니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진짜 선진국으로 가려면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영어만 잘하고 우리문화를 모르면 외국인들로부터 무시당할 것입니다. 우리문화와 서양의 합리주의를 받아들여 전통을 세우는 겁니다."
그는 경복궁내 국립민속박물관 건물(경복궁내 청기와건물)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복궁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건물은 불국사의 돌계단, 법주사의 팔상전, 금산사의 미륵전을 모방해 시멘트로 지은 것입니다.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정궁내에 이러한 이상한 건축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무지한 문화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철거하여 온전한 모습의 경복궁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는 뉴타운정책으로 옛것을 다 없애고 새로운 건축만 세우려하는 걸 안타까워 한다.
"창덕궁 서쪽 담장길의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높이 12m까지 계획됐어요. 세상에! 한옥이나 궁 옆에는 옛것을 살려야 하는데 이대로 두면 빌딩만 남게 돼요. 해방됐을 때 4대문은 묶었어야 합니다. 4대문안에는 파보면 문화재가 안 나오는 곳이 없어요. 문화재지구로 묶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북촌은 주거지로서 서울의 정체성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입니다. 전시성이 아닌 품격있는 정신이 살아있는 곳으로 보전했으면 합니다."
문화를 상품화한다는 데 약간의 거부감을 느낀다는 지적에 대번에 목소리를 높이며 대답한다.
"주자성리학에서 사.농.공.상으로 과학기술과 상업을 천대한 결과가 뿌리깊게 박힌 결과입니다. 조선이 망한 것도 그 이유죠. 문화를 품격있게 상품화하자는 겁니다. 문화를 상품화하는 것은 자존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창가의 등불
그가 박물관에서 최고 보물로 치는 것 중 하나는 이층 고불헌(古佛軒)이다. 고불 맹사성 대감이 살았다는 이층에서는 경복궁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특히 임금님 처소인 강령전이 잘 보인다. 세종임금은 스승이셨던 대감댁 등불이 켜져 있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임금이 되어서도 스승이신 대감보다 먼저 잘 수 없다는 호학성군의 자세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을 방문했던 한 역사 교사가 그 일화를 학생들에게 전해주자 "맹사성 대감이 주무시면서도 일부러 등불을 켜놓아 임금을 책 보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요즘 학생들을 보고 영악스럽다고 혀를 찬다. 그는 사도와 인륜이 무너지면서도 역사교육과 도덕과목도 없애려는 현실을 개탄한다.
1600년의 미소 - 간다라 불두
박물관 제1전시실에는 천육백년의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간다라 불두가 전시돼있다. 삼십년전의 학창시절 친구집에서 우연히 대영박물관도록을 보던 중 간다라 불두의 사진을 보고 전율을 느꼈던 그는 감쪽같이 그 페이지를 칼로 오려내 가져와 자신의 방 액자에 끼워뒀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30년 후 일본 동경에서 개최하는 고미술대전에 참여해 한국유물 몇점을 구입해 돌아오는 마지막날 운명의 간다라 불두가 자신을 보고 웃지 않은가! 삼십년 넘게 소망하던 미소가 자신 앞에 서 있었다. 주머니 돈을 다 털어도 부족했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오늘 나는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며 사정했다. 두 시간 후 일본상인이 비행기표를 보자고 해 보여줬더니 마지못해 불두를 건네줬다.
'몽골 속담에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그의 우리 문화 사랑이 결실을 맺기 바란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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