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이 없다면 잠시 덮는 것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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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약간 강박증이 있다. 강박증상 중의 하나인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물건들을 버리고 있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심한 것 같았다. 10년 전에 입사해서 8년 전에 그만 둔 직원의 고용보험이 처리되었다는 통보서도 서류함 어디 선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공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이렇게 불필요한 것들이 남아 있다면 꼭 필요한 것들을 바로 찾을 수 없는 일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곤란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적에 한 달에 한번씩 신문이나 빈병을 모아서 냈던 ‘폐품 수집’의 기억도 작용한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물건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항상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고민하다 보니 남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는 정신과의사이면서도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IMF 이후로 경제사정도 좋지 않아서 사회 전반적으로 힘든 데다가 의료계의 몰락이 너무 속도가 빨라서 의사들도 요즘에는 너무 힘들어 한다. 눈에 보이는 건 잘 되는 사람만 보이니까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힘든 의사들도 너무 많다. 이런 현실에서 작으나마 병원을 꾸려나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이런 저런 신경 쓰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체중도 과체중이 되어서 건강 상의 문제도 있고 매일 환자들에게 ‘심리적인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취미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민망해서 시작한 일이다. 처음에는 약간 과장해서 애들 타는 세발 자전거 외에는 모든 자전거에게 추월을 당했다. 조금만 가도 숨이 턱에 차고, 조금만 멀리 탔다 싶으면 집에 와서 하루 종일 끙끙 앓아 누웠다. 그러던 것이 한달 두달 지나면서 체력도 생기고 체중도 빠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스치면 마약 중독자들이나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절정감 즉 ‘하이’를 맛보게 된다. 해지는 저녁에 자전거로 퇴근하는 길에 잠실철교 위에서 바라다 보는 한강은 그곳이 천국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그 순간 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내 몸의 살아 있는 반응을 느끼며 자전거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니 변화된 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그 동안에는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열심히 해서 많이 모아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현재의 실적이 좋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고 나빠지면 근심이 생겼다.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꼭 자전거만 타겠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소박하게 자기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길로도 갈 만 하겠다는 생각이다. 때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잊어버리고, 또 단순한 마음으로 사는 게 행복의 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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