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 못 이루는 한국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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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 내원하는 사람들의 거의 90% 이상이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다. 그리고 잠을 잘 못자는 수면장애는 순수하게 잠만 못 자는 게 아니라 다른 문제가 배경에 깔려 있을 때가 많다.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서 시작해서 통증이나 암 같은 심각한 신체질환이나 실연이나 사업의 실패 같은 일상의 문제들로 인한 고민 등등 잠을 못 자는 이유는 사람 사는 모습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래서 대개는 흔히 수면을 돕는 약물을 처방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나라처럼 정신과 약물에 대한 공포감이 심한 곳을 없을 것 같다. 자살하고 싶다고, 실제로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자살 기도까지 했던 사람이 주변에서 ‘정신과 약 먹으면 바보 된다’거나, ‘한 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한 마디씩 하면 더 이상 약물을 복용할 수 없다. 아이러니한 점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도 잘 복용하고 운동을 하거나 생활의 나쁜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약물을 비교적 쉽게 줄이다가 끊게 되는 반면, 첫날부터 걱정에 잠겨서 계속해서 질문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서 약물 복용이 더 길어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불안이 뿌리 깊게 박혀 있고, 그 불안이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수면 목적으로 사용하는 약물을 끊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잠을 자기 위해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면제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별로 없다. ‘수면제 중독’이라 함은 몸이나 마음이나 잠을 못 잘 이유가 없는데 단지 수면을 돕는 약에 중독되어서 잠을 못자는 경우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분들은 그런 이유가 아니라 잠을 자기 힘들기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상황이 오래 유지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노인들의 경우, 뇌의 수면 싸이클 자체가 약간 취약해져서 잠을 자기 힘들다. 또한 퇴행성 관절염이나 그 외의 만성질환 혹은 심리적인 이유로 외출이나 운동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요즘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걱정거리를 달고 사신다. 본인들이 문제가 없으면 사업이 잘 안 되는 아들, 이혼한 딸, 자식들 간에 돈 빌려주고 못 받는 식의 문제가 생긴 갈등 같이 밤새 깨어서 고민하게 되는 걱정거리들이 너무도 많다. 그 외에도 한창 재미있게 사회생활하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는 새내기 주부들은 아이가 유치원에라도 가기 전에는 너무 힘들어 한다. 약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마트의 술 파는 매장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주부들도 많다. 취업이 안되어 우울한데다가 밤 늦게 자는 패턴 때문에 약이라도 먹지 않으면 그나마 오전에 못 일어나고 해 질 무렵에 일어나는 젊은이들도 너무 자주 본다.
수면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의 결과이자 피곤한 삶의 단면도이다. 약이 문제의 시발점이 아니라 약을 권하는 잠 못 드는 한국 사회가 문제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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