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해를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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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2010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우리들은 늘 이맘때가 되면 한해를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자책한다. 우울증 환자분들도 이때가 되면 약간씩은 더 감상에 젖어 힘들어 하는 걸 느낀다. 한동안 뜸하게 안 오시던 분들이 다시 오는 경우도 많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의 기억은 선택적이고 상황이나 감정에 많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밤에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다시 보고 너무 유치해서 찢어버리곤 했던 세대들은 알겠지만 밤의 감상에 젖은 생각과 아침 햇살을 받고 하는 생각은 같은 사람의 생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다르다. 분위기와 감상에 따라 다른 식으로 세상과 자신, 미래와 과거를 바라본다. 그러므로 이때 하는 생각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울 것 같다.
올 한해도 수많은 사람들의 속사정을 듣고 그 마음을 나누었다. 마음의 무게감으로 보면 한해에 한 20살씩은 먹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스쳐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남는다. 어떤 사람은 보람을 느꼈고, 어떤 사람은 아직도 전문가로서 역부족임을 느끼고 힘들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을 다 마음에 품고 생각해 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봐도 그와 비슷한 20년 후 쯤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니까 절정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림자를 보게 된다. 반대로 상처와 상실감에 시달리는 고뇌에 찬 얼굴에서도 언젠가 '내가 그런 때가 있었나?'하는 이전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덧씌워지니 어둠 속에도 빛이 있음을 느낀다. 정말이지 사람은 한 때의 모습으로 판단해서 좋아하고 좌절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인생은 사람 생긴 얼굴 모양처럼 다 다르지만 우리가 사는 건 다 매 한 가지인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인가 고민해 본다.
오늘의 나는 이전의 내 모습이 다 합해지고 거기에 화학반응까지 일으켜 변형된 총합임을 느껴본다. 내일은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발전은 과거를 잊으려 하고 현재를 부정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미래는 우연이 아니라 많은 인연과 사연이 겹친 필연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어느 한 해의 삶이 그 전해보다 더 나은 삶이었다면 그건 그 전해의 삶에서 충분한 자양분을 얻었기 때문이니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 보인다. 진정 삶은 잘난 모습이 많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못난 모습을 잘 감싸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오늘 한해를 보내는 마음이다. 올 한해 힘들게 살았던 모든 분들에게 마음을 담아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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