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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명이 공유하는 이 남자의 일상
작성자 관리자

[인터뷰] 나무에 새긴 마음으로 가슴 속 채워주는 판화가 이철수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마음이 쓸쓸했다. 힘든 일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로 들어섰다.
나뭇결을 드러낸 흑색 작품들 속에서 마음에 위로가 쌓였다. 판화가 이철수(57)의 30주년 기념 판화전 '새는 온몸으로 난다'에 전시된 작품들이었다. 혹시 인터뷰 섭외가 불발에 그치더라도 전시장에서 얻은 풍요로운 기운만으로도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한 명, 두 명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까지, 1층에선 수녀님들을, 3층에선 스님을 만났다. 이 모습이 바로 이철수 작가의 힘인가 보다, 헤아려 보는데 전시장 뒤편에서 그가 선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참새처럼 볼품없는 우리의 온몸을 표현하고 싶어"

"이번 전시회는 작품 보면서 눈물 흘리는 분들이 유난히 많았어요. 위안, 위로 받았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많았고. 그 모습 보면서 자기 슬픔이 많아진 시대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판화가 이철수는 지난 7월 12일까지 열린 30주년 기념 서울 전시회에 대한 소회를 묻자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풀어냈다. 작은 머루송이도 쉬이 지나치지 않듯 평범한 이들의 눈물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그다. 잘 살겠다고,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 데도 인정받기 힘든 시대다. 인정은 커녕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받는다. 그 속에서 상처받는 이들에게 그는 목판화를 통해 다독인다. '괜찮다, 괜찮아', '너 하나를 위해 오늘은 온 우주가 있는 듯'이라고.

자분자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사람을 끈다. 그의 작업실 곳곳에 걸려있는 판화들이 함께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사람의 지문처럼 나무의 결은 다 제각각이고 결들이 숨을 쉬어 목판을 쓴다고 그가 말했다. 전시회 때 본 밭이랑을 지문처럼 표현한 작품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갖고 있지만 그 모양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지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노동의 이야기가 그런 작품으로 되살아났을까. 그의 말과 작품 속엔 사람을 사색하게 하는 힘이 숨어있다.


도시에서는 얻기 힘든, 농사가 주는 선물들이 있다.

"우선 농사는 내가 노력한 것을 내가 직접 거두는 경험을 할 수 있죠. 사실 직장생활하면서 하는 일은 보통 내가 땀 흘린 결과물을 내 손으로, 내 눈으로, 내 몸으로 거두거나 확인하기 힘들잖아요. 물론 고된 일이긴 하지만 그 결실은 훨씬 우회하는 통로를 통해, 추상화돼서 내게 다시 돌아오잖아요. 또, 노동의 가치나 의미에 대해서도 실감있게 배우는 기회를 현대인들은 대개 못 가지잖아요.
근데 농사를 지어보면 땀 흘린 것 이상의 것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걸 통해서 하늘, 땅, 모든 자연이란 것이 있어서 비로소 내가 있을 수 있고, 농사라는 사람의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배우죠. 그런 관계 속에서 돌아보는 나라는 존재는 오만하기가 어려워 보여요. 신랄하게 얘기하면, 별것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하는 일이 대단한 것인 양 어깨에 힘주기 힘들어요."

어디를 가든 가능한 한 함께하려고 한다는 이철수 부부다. 낮엔 농사일을 같이 하고, 저녁에 그가 작업실에서 판화를 새기면 부인은 마늘 다듬거리 등을 갖고 와서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의 일을 하기도 한단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장면이다. 이철수 부부처럼 살고 싶다고 주례를 부탁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뭇잎편지'로 전하는 이야기, 6만여 명이 공유

그가 말벌에 쏘였다는 걸 다음날 6만여 명이 알았다. '이철수의 나뭇잎편지'를 통해 그의 일상과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002년 10월부터 꼬박 8년 넘게 이메일 엽서를 보내고 있다.

"그 즈음에 홈페이지를 열었어요. 근데 화가들 사이트 중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이트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내 거라고 열어놨는데 판화는 생산량이 빤해 새그림을 매일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람들 관심을 끌기가 어렵잖아요. 홈페이지를 만든 친구가 '선생님이 직접 할 수 있는 걸 해봤으면 좋겠다'고 자꾸 권해서 직접 쓰고 그리는 건 가능하니까 그런 틀을 만들어달라고 했죠."

처음엔 띄엄띄엄 보냈다. 자꾸 회원들이 늘어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책임감이 생겼다. "약속 잘 지키고 꾸준히 하는 버릇이 있다"는 그는 부지런히 엽서를 그렸고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보내고 있다. 멀리 나갔다가 와서 늦은 밤이라도 나뭇잎엽서는 보내고 잔단다. 닦달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는 스스로 정한 마감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마감 놓치기 일쑤인 기자는 안다.
그가 실제 작업하는 종이를 보여준다. 정말 조금 큰 크기의 엽서다. 매일 얼굴 보면서도 엽서를 주고받던 중학교 때 친구가 떠오른다. 한 때 편지 좀 썼었는데 마지막으로 손으로 편지를 썼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통신 기계에 밀려 점점 잊혀 가는 엽서(편지)를 환갑을 바라보는 그는 매일 직접 쓰고 그려서 보내고 있다. '엽서'라는 형식뿐 아니라 '사색'을 이끌어내는 내용 역시 탁월하다. 계속 비가 내리던 얼마 전엔 '꽃도 울겠다. 사람들 우는 건 많이 보았다. 피다 지고, 피자 지고, 꽃이 꽃으로 있을 겨를 없이 비에 젖어지는 한여름. 사람도 비에 젖어 지고'라고 엽서를 보냈다. 한 편의 시 같은 그런 문학적 표현은 어디서 나올까.

"그렇게 느껴질 때 없어요?(웃음). 눈 앞에서 자연을 늘 보니까 그렇게 감정이입이라는 게 되는 것 같아요. 지혜로운 사람들이 해놓은 말들이 많잖아요. '한 티끌 속에 온 세계가 들어 있다(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는 불교의 표현도 있고, '밥 한 그릇을 잘 먹으면 세상을 아는 것'이라는 동학의 지혜로운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그런 언어들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그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나한테 조금 더 깊이 스며서 육화하면 내 눈에도 조금씩 내 안의 세상이 보이고, 또 세상에서 내가 보이고. 그러려고 애쓰면서 사는 일이 공부잖아요. 그런 눈으로 볼 수 있으면 꽃이 눈물만 흘리겠어요?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다 하겠지."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관훈갤러리 전시장에서 봤던 방명록 속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허기 채우고 갑니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돌아가는 길, 도시에서의 삶이 조금 만만해보였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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