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책 한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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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진단을 받고 서울에서 진도로 내려가 흙집을 짓고 살면서 만난 사람들, 느낌들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기자영 저, <내 인생의 좋은 날>이란 책을 최근에 읽었다.
저자는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6년 동안 개원의로 지냈으며 2000년, 암진단을 받고는 진도 귀성마을에 살면서, 명상공동체를 위한 자연의 집을 지은 젊은 여성이다. 말기암 환자로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수시로 찾아올 텐데도 그를 정신력으로 다스리면서 원망이나 불평없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맑게 응시하는 시선이 참으로 놀랍게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마음 수양을 쌓았기에 그토록 초연할 수 있는 건지... 암이 온 몸으로 전이되어 포천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고 있다는 구절이 책 앞머리에 나오는데, 현재 상태는 어떤지 참으로 궁금하다.
내 주변에서도 암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지만, 마치 초탈자의 경지에 이른 듯한 그녀의 글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혹시라도 투병 중에 있거나 암과 싸우고 있는 가족이 있는 분이라면 꼭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연금술이라는 대목이다. 잠깐 인용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좌선이나 연단 수련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지극한 환희의 경지가 극한 고통 너머에 있음을 체험했을 것이다. 고통을 넘고 또 넘고, 다시 넘고, 넘어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겠다 싶은 고통을 넘었을 때 비로소 만나진다. 하지만 고통을 고통이라고만 여겨서는 넘어갈 수가 없다. 고통을 육체에 남겨둔 채, 육체에서 나와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그것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고통 속에 푹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놀고 즐길 줄 아는 것이다. 물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뒤에 숨기고 있는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고통은 점차로 멀어진다. 이것은 이름 하여 연금술이라 하지 않는가? 거들떠볼 가치도 없어 보이는 납덩어리를 가지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금을 만들어내는 것, 혹은 곧 부패하고 말 포도주를 가지고 잘 발효시키고 숙성시켜서 그윽한 포도주를 만들어내는 것, 그러나 변화의 용광로 속에서 충분히 견디지 않고서는 결코 영원함을 얻을 수가 없다. 발효과정을 다 겪지 않은 포도는 썩은 포도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짧은 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사가 아닐까? 고통을 겪되 그 속에 빠지지는 말자. 인생이라는 납덩어리를 가지고 영원히 빛나는 황금을 만들자’
내가 만일 저자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고통을 대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그러지 못했을 거 같다. 비단 암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사업실패, 금전적 고통, 연인의 변심 등등 죽을 만큼 고통스런 분들에게 이 삶의 담금질, 연금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초가을의 문턱에서 좋은 책 한 권을 만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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