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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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나를 닮아서 고지식한 편이다. 작년까진 돈을 주어도 쓸 줄 몰라서 쓰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구와 피시방에도 가고, 밥도 사먹는지 가끔 용돈을 달라는 정도이다. 엊그제 계절이 바뀌면서 겨울에 집안에서 입을 옷가지 하나 사라고 돈을 주어 보냈다. 그런데 옷을 잘 못 사왔다. 사이즈만 보고 사왔는데 알고 보니 어린아이용이었다. 혼자서 고민하고 있길래 명색이 정신과 의사 아버지라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네 마음이 얼마나 안 좋을지 알겠다. 환불은 안 된다고 해도 그래도 다른 물건으로 교환을 될 터이니 너무 염려 말아라. 이런 실수를 하면서 세상살이 배우는 거다. 혹시 물건을 교환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그 옷이 그 가치는 충분히 했다. 자기계발서 공식이라면 이쯤해서 아들이 뭔가 감동을 느끼고 마음이 풀려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 여전히 마음이 안 좋다. 그러더니 도저히 화가 안 풀려서 참지 못하겠으니 같이 가서 교환을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아마도 자기가 실수해서 산 물건이 자기 잘못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따라나서는 게 기특하게 보인다. 그 동안에는 자기가 모르는 게 있어도 절대 질문도 안했다. 사교육을 전혀 안하기 때문에 부모가 챙겨야 하는데 그것도 싫다하니 갈등도 되었다. 그렇게 거부하던 아이가 아빠를 받아들인 계기가 재미있다. 자기가 못 푼 문제를 내가 항상 풀어주곤 했는데, 어느 날 아빠가 도형 문제 하나를 가지고 끙끙 매다가 결국은 다음에 다시 풀어보자고 하자 만세를 부르면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날을 계기로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자긴 항상 뭔가 문제가 있고, 아빠는 잘난 체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나 보다.
마침 아이들 엄마도 그 할인매장에서 파마를 하고 있었다. 그럼 물건 바꾸고 엄마와 같이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했더니 여동생도 데려가잔다.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때 이른 사춘기로 요즘 집안에서 한껏 무게를 잡고 있다. 최근엔 거의 어디 따라나서는 법이 없길래 데려나갈 생각을 못했는데 아들이 챙긴다. 네 살 터울이라 형제간의 경쟁이 심했었다. 큰 아이들이 다 그렇듯 자기가 한창 부모 사랑을 받으려 할 때 동생이 태어나 자기 사랑을 뺏아 가는 것처럼 보이니 예뻐 보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항상 같은 잘못을 해도 동생은 부드럽게 넘어가고 자기에겐 심하게 대한다는 피해의식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아빠에게 야단도 맞고 혼자 심통이 나 있으니 혼자 피해보고 있다는 마음도 풀리고, 동생이 미안하기도 했나 보다.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이번에 시험을 보았는데 아주 많이 못 본 것 같다고 한다. 그것도 아빠에겐 얘기도 않고 엄마를 통해서 들었다. 한동안 말도 없던 아이가 잘 본 과목만 얘기한다. 모른 체 하고 들어주니 조금 만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못 본 과목도 있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흘리고 넘어간다. 여자애들이란! 아들이 오빠랍시고 자기도 작년에 수학을 너무 못 봐서 처음으로 성적표를 찢어버린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저와 나도 다 아는 얘기였는데 1년 가까이 지나서 이제야 얘기한다. 시키지도 않은 말을. 얼마나 찔렸을까? 알고도 모른 체 하고 있는 것도 나중에야 눈치를 채더니만. 아들 녀석이란!
이게 가족이고,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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