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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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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이 되면서 받아보는 청첩장 숫자가 는다. 반가운 것도 있고, 때로는 아직도 이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 있나 싶은 청첩장도 있다. 어쨌거나 사회 생활의 일부다. 작년에 처음으로 주례를 부탁받고 아직 ‘나이가 어려서’ 주례까진 안되겠다고 거절했다가 하객으로 참여해서 식장을 무대 삼아, 하객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치러지는 결혼식을 보고 세대차이도 느끼고, 저 정도 분위기면 주례를 했어도 되었겠다 싶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결혼식의 피크는 역시 ‘검은 머리 파뿌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랑’일 것이다. 주례에 따라, 시대에 따라 조금 다른 표현으로 각색은 될 지언정 주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났으니 그 사랑 변치 않고 잘 살라는 거다.
하지만 한해 한해 나이도 더 먹고, 결혼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도파민이란 마법의 신경물질의 힘으로 뭐에 홀려서, 콩깍지가 씌여서 결혼의 기나긴 궤도에 오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난 후에 찾아오는 긴 장마같은 권태기와 그 고비를 넘지 못할 때 맞이하게 되는 마르지 않는 빨래 같은 불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 같은 가을 하늘 같은 결혼의 제 2막. 이런 것들은 봄 햇살 같은 결혼식장에서는 절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리라.
결혼해서 사랑하는 건 자기와 상대방을 다시 보고 변화하려는 노력이다.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자기의 숨겨진 성격은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처음엔 부인하고 상대를 비난하고, 자신을 합리화해보지만 솔직한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내 성질 참아주는 것만 해도 대단하고 그래서 배우자가 고맙다고. 또 그러니 새로운 사람 만나기 두렵다고. 결혼이 연애와 다른 건 꾸미지 않는 모습을 다 보여주고 또 본다는 사실이다. 상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방어되지 않은 어린애같은 내면의 모습이다. 폭력 남편 중에서 병원에까지 와서 거친 태도를 보이는 남편은 없었다. 밖에서는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그저 단점이라면 친구들을 좋아하거나, 맺고 끊는 것이 잘 안되어 거절을 못하다보니 사기나 이런 저런 안 좋은 일에 연루될 뿐이다. 아마 적당히 아는 사람 정도로 만났다면 너무 좋았을 법한 ‘전생의 원수’들도 많지 않을까?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마당에 헤어지면 남일 뿐인 상대를 아는 건 더 요원한 일이다. 내가 누군지도, 배우자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결혼 생활이 잘 이어지는 것이 신기해 보인다. 그런데도 오늘도 많은 부부들이 ‘잘 살고’ 있다. 그 분들이 그 결혼을 잘 이끌어 나가는 건 주변 사람들을 잘 모르는 마음앓이와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상한 마음으로 하는 노력이야 말로 사랑, 고마운 사랑이다.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할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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