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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관계 거리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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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한창 재벌들 이야기가 나올 때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었다. 재벌들의 특성상 정치와 얽힐 수 밖에 없는데 정치권의 후원을 받아 승승장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다. 당시에 국제그룹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공중분해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와닿았던 말이었다. “불가근 불가원”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되고, 너무 멀리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일반인들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이 스쳐지나갔고 올 한해에도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또 끊어졌다. 어떤 사람은 만나서 반가웠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알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끔찍한 기억을 남겨 주었다. 대인관계의 권력이 내게 있어서 그것을 조심해야 했다. 때로는 그 권력을 잘 못 다루어서 곤혹스러운 순간을 자초하였지만, 반대로 권력을 줜 사람에게 시달리며 전전긍긍할 때는 힘 없는 사람의 설움을 온전히 내 것으로 느끼기도 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서 남는 한 마디는 “좋은 사람이라도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 하지도 말자”이다.
연인 관계를 제외하면 한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은 관련된 다른 모든 사람에게 덜 잘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너무 인정하고 가까이 두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멀리하고 내 적을 만드는 것이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도 개봉되었지만, 사람 마음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고 힘이 있는 것이 질투가 아닐까? 잘 해주는 것은 사정이 생기면 안 그럴 수 있지만 질투나 미움은 자신이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살이 베이고 피가 나도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 자기 편은 언제라도 남이 될 수 있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는 한 내 편이 되기 힘들다. 심지어 한 뱃속에서 나온 동기 간을 서로 안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미움과 질투이다. 너무 빨리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내가 잘나가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환상이 있어서이며,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아니면 그 환상적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지불해야할 댓가가 항상 지갑보다 더 두껍기 마련이다. 아주 친한 사람은 고작해야 몇 명이지만 술자리에 안주로 나를 불러낼 사람은 무궁무진하다. 사회생활은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자기를 지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광조처럼 화려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것보다는 황희 정승처럼 밋밋해 보이는 여유와 자기 절제의 힘으로 어느 한 사람에게 치우치지 않고 모두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게 더 좋아 보인다. 한해 한해 지날 수록 나와 좋은 사람과 잘 지내는 것보다는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적대적인 사람에게 더 마음을 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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