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외환사정이 진짜로 위험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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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단기외채 비율이 높은 점을 들어 ‘아시아에서 가장 위험 나라’로 우리나라를 지목하자, 우리 정부는 ‘단기외채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점을 내세워 반박했고, 이코노미스트는 ‘장기 외채 중에서 상환기일이 곧 돌아오는 것도 단기외채에 포함했다’고 재반박했다. 정부의 이런 대응을 보노라면 한심하다는 생각뿐이다. 본질이 아닌 것을 문제 삼아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본질은 단기외채의 규모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가 과연 ‘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인가’,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남아공과 헝가리 다음으로 위험한가이다. 세상에! 외환보유고가 고갈 위기에 처함으로써 IMF의 구제 금융을 받은 파키스탄보다 더 위험하다니, 이게 과연 합리적일까?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또 다른 나라인 헝가리나 폴란드보다 우리나라의 외환사정이 더 위험할까? 우리나라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4위의 국가인데 우리나라 외환사정이 위험하다? 우리나라가 위험하다면 우리나라보다 외환보유고가 더 적은 나머지 200여개의 국가들에서는 진즉 외환위기가 터졌어야 했다.
더욱이 우리나라 국제수지는 최근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다. 2월의 무역수지는 33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고, 경상수지는 50억 달러를 넘어섰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최소 3백억 달러는 넘어설 것이고, 어쩌면 5백억 달러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2008년 국제수지 적자가 GDP의 5.7%에 달했던 폴란드, 5.5%에 이르렀던 헝가리, 6.0%에 이르렀던 파키스탄보다 우리나라가 더 위험하다? 7.6%에 달했던 남아공과 비슷하다? 참고로, 2008년 우리나라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0.7%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는 웃기는 픽션에 불과하다고 해야 한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살펴보자. 진짜로 단기외채는 심각한 문제일까? 아니다. 우리 경제가 비교적 호조일 때는 단기 외채가 장기 외채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했다. 이자율이 더 낮을 뿐만 아니라 상황이 어려워지면 금방 갚을 수도 있다. 또한 당시에는 국제 금융회사들은 우리 경제의 장래가 밝다고 여기고 단기 외채를 거의 무제한 빌려줬다. 당시에는 환율이 떨어지고 있어서 환차익까지 일부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단기외채가 문제다? 단기 외채가 문제라면 단기 해외채권으로 갚으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외환보유고로 갚으면 그만이다. 그럴 여유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단기 외채는 외환시장의 위험 요인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경제 관료들은 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즉, 경제 관료들은 1997년 말의 외환위기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던 것이다. 정책적 실패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경제 관료들의 주장이었으나, 이것은 경제 관료들의 정책 실패와 그에 따른 책임을 은폐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그랬으니, 단기 외채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점을 이코노미스트는 교묘하게 이용했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 편집진은 우리나라 외환위기를 1년 전인 1996년 말에 정확하게 예측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나다. 그들도 우리나라 외환사정이 건전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이 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를 부리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즉, 영국계 다국적 금융기관의 이해를 대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 용식(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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