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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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체제저항적인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었는데, 어느 날 수업에 안 오신 날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술을 드시고 정부 욕을 했다가 며칠 잡혀갔었다고 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마음에 남는 말이 많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공부잘하는 놈들은 절대 의대, 법대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의사나 법관은 사회의 문제들을 뒤치다꺼리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제일 똑똑한 학생들이 갈 곳이 아니란 논리였다. 똑똑한 놈들은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해야 그 사회가 발전한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살다보니 그 말이 꼭 맞는 말이었다. 특히나 정신과의사는 사람들의 감정,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을 하며 산다. 면담을 하루 종일 하다보면 얘기를 하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는 동일시가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겉도는 얘기만 하거나, 아니면 무미건조하게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정의 똥'을 치우며 살다보면 사회의 화려한 쇼윈도가 아니라 하수구 속이 더 익숙해 진다. 특히나 낮병원을 하다보면 더 그렇다. 사회복귀를 위한 정신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은 크리스마스나 명절이 더 외롭고 쓸쓸해진다. 그래서 다들 상태가 안 좋아지는 그 시기 직후가 더 힘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사시는 분들 중 여러 분이 가슴이 철렁해지는 말씀을 하신다.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이 자살하는 세상이니 우리 같은 사람이 살아있는 게 이상하다는 식이다. 사회적 의미를 떠나서,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해야만 했던 그분의 심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또 그 소식을 처음 봤을 때는 믿을 수도 없었고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마음 놓고 행복할 여유를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혹스런 마음에 젖어있을 수가 없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유혹을 느낄지, 허탈감에 자해하는 행동을 할지 난감하다. 이번에도 확실하게 느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반응이 너무 차이가 나고, 호불호가 너무 뚜렷한 것 같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분은 우울증으로 그렇게 고생하다가 이제 막 좋아졌다. 그런데 우울증약물을 복용해서 지금 마음이 슬프지 않은 것이 견딜 수 없다며 약을 먹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세상을 조금 산 정신과의사로서 하고 싶은 말은 확실하다. 우선 싫어하는 사람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예의를 갖추고 애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에게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우리에게 호소했다. 두 번째는 그분의 죽음을 정치공세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지지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그분의 정치철학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는 걸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생명이 꺾이는 건 정녕 그분이 원하는 바는 아니라는 것이란 걸 꼭 말하고 싶다. 삼가 그 분 가시는 길 평안키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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