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네가 누군지 아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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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듯,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은 알기 힘들다. 굳이 속일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는 게 아는 게 아니다. 사람이 오래 같이 살다보면 모난 데 다듬어 지듯,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부분을 조금씩 양보하고 회피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일도 없이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사이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남편은 부부생활에 만족하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다니는데, 그 남편의 부인은 하루도 더 같이 살 수 없을 정도 못 견디겠다고 한다. 남편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부인은 자기 나름대로는 의사표현을 확실히 했는 데도 남편이 못 알아 먹어서 답답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대화의 깊이의 문제인 것 같다. 자기 마음을 전혀 노출시키지 않고도 몇 시간씩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얘기거리가 많다. 또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주로 남 욕하는 얘기만으로도 시간이 잘 간다. 또 사람들이 자기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괜히 순진하게 믿었던 친구에게 자기 비밀 얘기했다가 그 얘기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상하게 변질되어 돌아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비밀 얘기를 하지 않고 자기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사회기술 정도는 갖춰진다. 또 본심을 얘기하는 게 대개 부담이 되는 얘기일 때가 많으니까, 즐거운 모임에 가서 그런 얘기하기도 어색하다.
적절히 사회적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연인들이나 부부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서로 마음을 열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사이에도 오해는 흔하다. 이런 오해를 하는 사례를 잘 살펴보면 자기 버전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있다. 아주 단순한 “글쎄”라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한번 더 고민해 보자는 의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거절의 의미일 수 있다. 거절하는 “글쎄”를 말을 이어가는 접속사나 더 깊이 생각해 보자는 말로 해석하면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런 일은 큰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언어의 습관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의식하지 못한다.
만약 지금 오해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내게 오해를 하고 있다면,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나의 언어습관을 한번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만약 지금 내게 호의를 지니고 있어 보이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 말을 그 사람 버전으로 이해하고 있는 지 반문해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걸 대충 짐작으로 끝내지 말고, 무슨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보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대인관계가 조금이라도 더 투명해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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