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직후 친일파 기용이 필수적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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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립운동을 내세워 친일파를 처단했던 북한은 경제가 엄청 어려운 데에 반해, 남한은 친일파를 등용했는데 경제는 세계적으로 잘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친일파를 등용한 것이 옳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사의 무수한 관계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온 얘기일 뿐이다. 세상사에는 인과관계도 있고, 상관관계도 있으며, 전혀 무관한 관계도 있다. 인과관계란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다른 어떤 사태를 일으키는 관계를 일컫는다. 그 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끼쳐 새로운 사태로 발전하는 것도 인과관계로 친다.
예를 들어, 화폐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물가가 상승하고, 상승한 물가가 다시 통화량을 늘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관계를 인과관계라고 일컫는다. 두 변수가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셈이다. 이에 비해, 상관관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서로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관계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 술집은 장사가 잘 되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고 치자. 이 경우 술집이 장사가 잘 되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로서 분명히 무엇인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미니스커트의 유행이 술집의 장사를 잘 되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상관관계라고 부른다.
친일파의 등용이 경제발전을 불렀다는 것은 기껏해야 상관관계 정도만 있다고 해야 한다. 아니다. 우리 경제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고 해야 한다. 친일파들이 득세하여 한창 세력을 펼칠 때에는 우리 경제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의 와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가는 1년에 수백 수천 %씩 오르기도 했고, 경제성장은 감히 상상조차 못했었다. 당시의 국민들은 그야말로 비참 그 자체의 생활을 이어갔었다.
이에 비해,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독립했던 나라들은 훨씬 빨리 경제발전에 나섰고, 이 나라들 중에는 식민시대의 관료들을 철저하게 도태시킨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은 해방 직후에 친일파를 척결했지만 경제를 재빨리 안정시켰고 이때부터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졌었다. 이후 사회주의식 계획경제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장기침체의 길로 들어섰지만 말이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던 인도네시아나 대만도 우리보다는 더 빨리 경제발전을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195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신생 독립국 중에서도 최악의 경제실적을 기록했으며, 따라서 친일파 등용은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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