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배의 남자 |
|
혼자 사는 후배가 몹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할 얘기가 있으니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 실연을 당했구나’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녀는 사실 2년 남짓 가정이 있는 남자를 만나왔었다. 몇 커플 미팅을 주선하는 자리에 그 남자가 나와 있었고, 싱글인 친구를 따라 엉겁결에 나왔던 그 남자와 내 후배는 결국 연인이 되고 말았다. 그 후 2년여의 세월동안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열애에 빠졌었다.
그 후배와 가까운 사람들은 남자의 존재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부인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 얘기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결론과 비슷하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전화를 한 부인은 자신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싸구려 옷을 살 때조차도 망설였는데, 남편의 여자는 남편에게 수십 만원짜리 옷을 선물 받았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출장 갔다 오며 똑같은 카메라를 사다준 사실에 두 여자 모두 허탈해 했다.
그러나 후배 입장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사건이 터진 이후의 남자 태도였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너만을 사랑한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라고 말하던 남자가 부인에게 들키자 후배를 마치 스토커인냥 취급했다는 것이다. 와이프의 추궁에, 사실은 그 여자가 자기를 집요하게 따라다녀서 어쩔 수 없이 몇 번 만나줬다 식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던 것이다.
유부남이란 유턴하는 남자라던데, 일이 터지고 나니 후배의 남자태도가 가관이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불륜 사실이 들통나자 남자가 와이프에게 당신은 참 괜찮은 여자였지만 지루했었노라고, 안 그럴려고 했지만 당신의 친구에게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었노라고 고백을 한다. 남자는 부인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거절당하고 애인집으로 들어가 이혼을 하지 않은 채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
예전에 한 드라마 작가가 유부남을 사랑하면 마스카라를 칠하지 말라고 얘기하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눈물 마를 일이 없을 테니까. 드라마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극의 전개를 보니까 결국은 애인의 품을 떠나 헌신하고 살았던 부인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요즘 내 후배는 쓰라린 배신의 충격에서 헤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녀를 지켜보며 내가 느끼는 건 역시 달콤함은 짧구나 하는 것과 자신이 위태로워지면 사랑이고 나발이고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새삼스러운 씁쓸함 같은 것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