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리케 카르도소를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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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오랜 세월동안 높은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의 늪에 빠져서 좀처럼 회생할 것 같지 않았던 브라질 경제가 모처럼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룰라 다 실바 대통령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좌파의 대표적인 정치인인 그가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경제번영을 이끌고 있으니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브라질의 놀라운 경제성적도 룰라 대통령만의 업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기초는 이전 대통령인 엔리케 카르도소에 의해 다져졌다고 해야 한다. 세상인심은 씨를 뿌리고 경작한 사람보다는 수확하는 사람에게 주목할 따름이지만, 갖은 비난과 고통을 이겨내며 애써 땀 흘려 일한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엔리케 카르도소가 누구이던가? 교수시절에는 좌파 혹은 진보의 대표적 화두 중 하나인 ‘중속이론’의 대가였다. 그의 대표작 [종속이론과 남아메리카]라는 책은 중남미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제3세계 전체의 표준 교과서 역할을 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종속이론이란,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선진국과의 관계를 강화할수록 그에 대한 예속을 강화시킬 뿐이라는 학술적 주장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엔리케 카르도소는 진보진영의 지도적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브라질 경제를 살려냈을까?
그는 1993년에 재무부 장관에 취임한 뒤, 당시 연평균 2?3천%에 이르던 인플레이션을 극적으로 잡아냈다(한 해에만 물가가 5천%, 즉 50배 넘게 오른 적도 있다). 실제로 1995년에는 한 자리 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그 뒤로도 물가는 비교적 안정적인 추세를 이어갔다. 이런 업적을 바탕으로 그는 1995년 11월의 대통령 선거에 나섰고 승리했다. 국민들은 물가안정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셈이다. 실제로 물가가 장기간 안정되자 브라질은 국제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성장잠재력도 훨씬 더 커질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카르도소는 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물가안정에 매진한 것은 물론이고,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그 다음으로는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앞장섰다. 1997년에는 최대의 국영 광산회사인 CVRD를 민영화했고 그 뒤를 이어 리오그란데 전화회사, 미나스제라이스 주 국영은행 등 10여개 대형 국영기업을 민영화했다. 그 결과 브라질 국민들에게 오늘날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나라 진보도 그만 변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종속이론의 대가였던 엔리케 카르도소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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