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시급한 것은 트라우마의 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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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중에는 ‘트라우마’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것이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정신병으로서 흔히 과민반응, 충격 재경험, 감정회피 등의 세 가지 증세가 나타난다. 즉, 늘 불안스러워 하고 주위를 경계하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과민 증세를 보이고, 사건 당시와 같은 강도로 충격이 느껴지는 기억이나 꿈 혹은 환각 등을 겪으며,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기억을 피하려고 노력하며 정상적인 반응은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도 이런 트라우마라는 집단적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먼저, 과민반응 증상을 살펴보면, 세계사를 모두 둘러봐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 최근 우리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업은 이익을 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늘어도 생산을 늘리거나 투자를 늘리지 않으며 고용도 늘리지 않는다. 언제 또 도산할 위기에 처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소득이 늘어도 소비를 그에 상응하게 늘리지 않는다. 언제 또 정리해고를 당하는 등 어려움에 처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충격 재경험 증상도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누군가가 경제위기론을 제기하면 온 국민은 그 충격 속에 쉽게 빠져들곤 해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8.5%라는 매우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던 2000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경제위기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비이성적인 행태가 나타났다. 소비자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였던 것이다. 결국 경기가 급강하하면서 다음 해의 성장률이 3.8%로 떨어졌다. 그 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자주 반복되었다.
끝으로, 감정회피 증상도 나타났다. 현재 우리 국민이 겪는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양산, 중산층 붕괴, 취업난 등의 경제적 고통은 거의 모두 외환위기에 그 근원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호조를 보였고, 중국특수 등 해외특수가 꾸준히 이어졌으므로, 만약 외환위기만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 경제도 초장기 경제번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외환위기가 왜 일어났는가, 그 전개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사후적으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했으나,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파국을 불러올 정책들이 마치 경제를 회생시킬 대안인 것처럼 떠들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트라우마의 정신과적 치료가 가장 시급하고 필수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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