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별거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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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이 되었다. 세기말이 되었다고, Y2K라고 해서 2000년이 되면 99년에서 00년으로 다시 돌아가서 큰 혼란이 온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던 때가 아련한 기억으로 다가 온다. 세상은 바뀌지만 숫자로 바뀌는 건 아닌 것 같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다시 오는 것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개원 초기의 일이다. 그때는 IMF 직후라서 다들 개원하는 것을 반대했다. 길면 종이버전에선 빼기 한번은 동문 모임 나가서 얘기를 들어보니, 그날 모였던 사람 10여명 중에 딱 한 사람이 찬성을 해주는 데, ‘어차피 책임은 네가 질 것이니까’라는 단서를 단다. 그 정도로 어려웠던 때라서 두려움도 많았고 노력이나 무리도 많이 했다. 일 중독증 때문에 가족들 손에 이끌려 오는 사람들이 결코 필자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 같지 않았던 씁쓸한 기억이 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누구에게 전화가 오거나 모임이 있으면 ‘혹시나’ 했다가 항상 ‘역시나’였다. 내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의사니까라는 생각으로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만 있었다. 서로 같은 입장이었으니까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인생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그저 꾸준히 노력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봉급을 받는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취업이 유난히 어려워서 남이 놓아버린 자리를 가서 일했다. 그래도 전문의자격증을 가지고 택시 운전을 할 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일했는데 의사 사회에서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느낀 것은 그 자리가 임시로 거쳐 갈 자리라는 사실이었다. 죽이든 밥이든 이게 내 자리다라는 생각을 할 수 없으니 왠지 불안하고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안정감이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대에서 30대가 되던 해에 유난히 방황하고 마음의 홍역을 치렀다.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당시 내 모습은 그냥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였지만, 달력은 내가 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평안하고 행복하다. 물론 남보다 잘나고, 예전보다 더 나아져서가 아니다. 이제 내 자리나 분수를 알 것 같고, 부족하지만 몇 년전부터는 그걸 받아들이기 시작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구의연세정신과 www.psylo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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