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 |
|
얼마 전 한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미국 빈민가의 한 흑인 소녀가 변두리 학교에서 시행된 단어경시대회 같은 데서 우승을 했다. 더 나은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교장 선생님의 친구를 소개받는다. 그는 흑인이지만 유명 대학의 영문과 교수이며 단어경시대회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너무나 완벽한 스승이었고 그 스승 밑에서 열심히 수련한 그 소녀 역시 감동적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자주 보는 내용이지만 마음에 강하게 와닿았다. 아직도 혼자 서기가 안되어서 스승을 필요로 해서인지, 이제 많은 사람의 스승이 되기 시작하는 아이인데 그 준비가 덜 되어 불안해서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스승의 어떤 전형을 보여주었는데 그 공식을 정리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우선 관계의 시작이다. 생각해보니 참 중요하다. 남녀 관계든, 계약 관계이든 그 관계의 시작이 중요하다. 심지어는 부모자식도 마찬가지이다. 정신과에 처음 입문해서 원하는 임신인가 아닌가에 따라서도 아이의 성격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서로 준비가 되어 있어서 좋은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발적 동기부여이다. 그 좋은 스승과 대비되는 사람이 그 소녀의 경쟁자였던 중국 소년의 아버지였다. 그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아이를 닥달하였다. 반면 이 스승은 그 소녀가 스스로 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계속 자극을 주고, 모델이 되기도 한다.
세번째는 기초 다지기였다. 우리나라가 빨리 발전한 대신 문제가 되는 것이 부실한 기초가 아닐까?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는 것이 다 부실한 기초 때문이다. 그 소녀도 조급한 마음에 더 빨리 눈에 보이는 기술을 익히고 싶어했지만 그는 언어의 기초를 하나 하나 짚어주고야 그 다음 과정을 제시하였다.
그 다음과정은 그 소녀 측에서 보여준다. 그 완벽해 보이는 스승에게도 빈 곳이 있었다. 그는 딸아이를 잃었다. 그 때문에 상심하여 학교 강의도 그만 둔 상태였다. 그 소녀는 예민하게 그의 반응을 보고, 그의 주변을 관찰하여 그의 아픈 곳을 알고 어루만져 준다. 비록 스승과 제자 관계였지만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였다. 이것은 그가 처음부터 지식 만을 전달하려고 하거나, 우월한 지적인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영어 단어만 전수하려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가지 지향점이었지만 각자에게 의미가 있는 길을 가는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 부분이 필자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4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영문과 교수와 12살짜리 소녀가 서로가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마지막은 역시 독립이다. 스승은 제자를 떠나보내기 위해서 가르친다. 이 과정은 보내는 스승이나 떠나는 제자에게 모두 힘든 과정이다. 스승이 제자를 자기 소유물이나 공적으로 생각한다면 가능치 않다. 제자가 스승을 자기 내면에 받아들이고 결국 그를 극복하지 않으면 그에게 떠남은 버림받음이고 안정의 원천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다. 두 사람 역시 이런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이 과정을 잘 거쳐나간다. 마지막의 1등이라는 성취는 있으면 좋지만 없더라도 아쉬울 것 없는 작은 선물이다. 사람 앞에서 강의도 하고, 치료를 했지만 과연 몇 사람이 나와의 경험을 통해서 홀로서게 되었을 지 자신이 없다.
구의연세정신과 www.psylove.co.k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