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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영화는 타협할 생각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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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영화는 타협할 생각이 없다.
영화 비몽 리뷰
김기덕 감독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세계적인 감독'이라는 데에는 거의 이견이 없을 듯싶다. 유럽에서 김기덕은 차이밍량에 비견되는 인기 감독이며 이미 자신의 영화세계를 확고하게 보여준 감독이다.
영화제마다 빽빽한 양복쟁이들 사이로 후줄근한 패션을 하고 나타나면 엄청난 수의 '갤러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얼굴이라도 보려고 성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모국에서는 도통 이해 못할 영화만 찍어대는 기인으로 오해와 비난을 가장 많이 사고 있으며 등을 돌리는 이들 또한 많다.
<비몽>은 김기덕의 열다섯 번째 영화다. 이나영과 오다기리 죠라는 한일 톱스타의 출연 때문에 개봉 이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비호감 감독이 호감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다니 이번에는 덜 어려운 물건이 나오지 않겠느냐 한다. 혹 김기덕이 대중과 소통해보려 애쓰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번에는 덜 어려운 작품일까?
영화 밖과는 다르게 영화 안에서 말의 소통이란 문제없는 것이다. 란(이나영)은 한국어로, 진(오다기리 죠)은 일본어로 말하지만 언어장벽을 무시하고 대화가 오간다. 언뜻 어이가 없어 뵈는 모습인데 그거 별 문제 아니라고 그냥 넘어가는 김기덕은 역시 대담하다. 원래 김기덕은 자막조차 없이 극장에 올리려 했단다. 이 비현실적 설정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몽롱한 분위기를 더한다.
분위기를 또 더하는 것이 화면에 가득한 한국미인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부터 이번 <비몽>까지 김기덕 감독의 정성이 지극하다. 란은 개량한복을 만들고 진은 목도장 장인이다. 쏘다니는 길은 한옥 골목이며 사는 집은 한옥집이다. 심지어는 경찰서까지 한옥을 개조하여 찍었으니 영화 전체가 거의 '한옥 퍼레이드'다.
거기에 보광사의 종, 그림, 돌탑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김기덕 감독의 주된 관객이 유럽 쪽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영화제를 겨냥한 오리엔탈리즘 우려먹기가 아니냐는 핀잔을 들을 법하다. 하지만 김기덕이 한국미 표현에 워낙 꿋꿋한데다 영화를 신비하게 만드는 데 맛을 더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 옛것의 멋은 별다른 미장센 없이도 그 자체가 훌륭한 그림이 된다.
영화 전체가 거의 '한옥 퍼레이드'
사진 ▲ 김기덕 감독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옮기는 데 열정적이다. <비몽>에서도 한옥을 비롯한 한국의 멋이 화면에 가득하다.
ⓒ 김기덕필름 비몽
란과 진은 꿈으로 연결되어 있다. 둘 다 밤이면 잠이 든다. 진이 꿈을 꾼다. 그러면 란은 쿨쿨 자면서 진의 꿈과 똑같이 행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 진은 꿈에서 아직 사랑하는 옛사랑(박지아)을 찾아가지만, 란은 현실에서 증오하는 옛사랑(김태현)을 찾아간다는 거다.
진은 사랑하는 여자와 뽀뽀하지만 란은 증오하는 남자와 뽀뽀해야 한다. 자기 몽유병의 전모를 알게 된 란은 화가 나서 펄펄 뛴다. 란은 진에게 잠을 자지 말라고 어처구니없는 협박을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잠을 안 자고 살까.
물론 불쌍한 진은 잠을 안 자려고 무척 노력한다. 이 영화에 미성년자관람불가 딱지가 붙은 것은 이거 때문이다. 이미 외설에 익숙해진 요즘 섹스신은 덤덤하다. 그러나 다른 것이 강도가 세다. 불면하기 위한 진의 싸움은 무척 절절하여 눈뜨고 보기 싫을 정도다.
여의사(장미희)는 둘의 운명을 읊는다. 여러 도인이 뱉는 말이 으레 그러하듯 알쏭달쏭하다. 둘은 백과 흑의 색깔처럼 "한쪽이 행복하면 다른 한쪽은 불행"하다. 그러나 백흑동색(白黑同色)이라! 두 사람은 한 사람이라는 것! 심지어 옷조차 주로 란은 백색을 입고 진은 흑색을 입는다.
그러나 나중 둘이 사랑하게 되면 란이 흑색을 입기도 하고 진이 백색 옷을 입기도 한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둘 사이의 깊어지는 정서를 표현한다. <비몽>은 멜로의 껍데기를 입은 영화고 둘만의 장면이 많지만 (억울하게도) 통속적 멜로와는 달리 란과 진의 접촉이 별로 없다. 마치 시소 같은 관계라 란의 몽유병을 막기 위해서는 교대로 잠들고 깨어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의 방향이 사랑감정을 넘어선 곳을 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는 이가 알아서 읽어야 하는 영화
사진 ▲ 란(이나영)과 진(오다기리 죠)은 옛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고통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김기덕은 이들의 구원을 불교에서 찾는다.
ⓒ 김기덕필름 비몽
갈대밭에서 란과 란의 옛사랑, 진과 진의 옛사랑이 함께 있는 장면은 영화의 감정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둘과 둘, 혹은 넷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게 된다. 영화 제목부터가 그러하듯 꿈이 영화를 풀어가는 열쇠인 것이다.
나비 목걸이를 비롯하여 구석구석 숨겨진 메타포를 찾아내지 못하면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돈 버렸다'고 울화통을 터뜨리게 되겠다. 아무래도 배우는 배우고 감독은 감독인 모양이다. 김기덕 영화는 타협할 생각이 없다. 김기덕은 영화를 읽어주지 않는다. 보는이가 영화를 읽어야 한다. 관객과는 외따로 자기 철학을 가진 감독의 자존심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다섯 번째 영화에서도 역시 김기덕의 철학은 온전하게 살아있다. 갈대밭 꿈을 전환점으로 진은 과거 옛사랑의 기억과 집착을 버리고 란에게 다가서려 한다. 그러나 꿈을 제멋대로 꾸지 못하듯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거다. 손목에 수갑까지 채워가며 옛사랑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지금 여기 우리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애쓰지만 말이다.
란과 진이 보광사로 놀러가서 모처럼 즐겁게 노는 장면이 있다. 무척 예쁜 장면이지만 그 밑에는 불교와 손잡는 섬뜩한 뜻이 숨어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불행이 집착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둘은 옛사랑에 집착한다. 그리하여 둘의 삶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둘은 무엇으로 지옥에서 자신들을 구원할까.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결말이다. 란은 나비가 되어 날아가 진의 곁에 머문 뒤에야 과거로부터 구원되었다. 진이 한강으로 간 이유도 그러했다. 현실과 꿈은 하나가 되었다. 마침내 둘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음껏 사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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