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보유고를 쏟아부어도 환율은 왜 오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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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한국은행은 10월말 현재의 외환보유고가 9월에 비해 274억 달러가 감소한 2,123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운용수익과 국민연금과의 통화스왑 해지, 경상수지 흑자 등 증가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고가 이처럼 감소한 것은 시장에 대한 외화유동성 공급의 증가 때문이었다는 것이 한국은행 설명이다. 쉽게 말해, 환율안정을 위해 대규모로 달러를 투입했다는 것이다. 그럼 환율은 안정되었을까? 아니다. 잠시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10월 15일에는 무려 133원이 오른 1,373원을 기록했다. 이후 1,300원 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23일에는 1,400원 대를 돌파하였고, 28일에는 1,468원까지 치솟았다. 10월 한 달 동안에 외환보유고에서 274억 달러나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은 왜 이처럼 급등세로 돌아섰을까? 왜 귀중한 외환보유고만 소모했을 뿐,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위와 같이 실패했을까? 국내 경제전문가들이 흔히 말하듯이, 정부의 시장개입은 실패하기 마련일까? 아니다. 정책집행이 적절치 못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수요의 시간이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략적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든 재화가 다 마찬가지이지만, 재테크의 대상인 재화는 ‘수요의 시간이동’의 성질이 특히 강하다. 즉, 가격이 상승추세에 있을 때에는 미래의 수요가 현재로 옮겨오곤 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는 것이 이익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래의 수요가 현재로 이동해오면, 가격은 더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흔히 사람들은 이것을 투기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이런 가격상승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수요가 이동해버린 때가 닥치면 수요부족 현상이 나타나고(수요가 이동해갔으므로), 이에 따라 가격은 하락압력을 받게 된다. 만약 가격이 하락을 시작하면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부동산 투기열풍이 지나간 다음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건설사들은 부도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10년 내외를 주기로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왔다.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세계적인 금융시장 불안은 그 여파라고 할 수 있다.
외환시장도 부동산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기가 지나간 다음에는 적정 수준, 즉 균형가격 수준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환율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수출기업은 물론이고 내수기업까지 가격경쟁력을 잃는다. 그러면 국내 생산이 부진해지고 경기가 하강하며, 국제수지까지 악화시킨다. 한 마디로, 외환시장에서의 투기도 부동산 투기에 못지않게 경제적 부작용이 심한 셈이다. 따라서 외환 투기도 부동산 투기에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사전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수요의 시간이동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가격상승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정책개입이 필요했으나, 기껏해야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만 막았을 따름이다. 그래서 환율의 상승추세는 지속되었고, 수요의 시간이동도 계속되었다. 정책당국이 시장에 개입하더라도 상승추세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만 시장참여자들에게 심어주었다. 정책이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수요의 시간이동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율은 더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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