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과 이론, 그리고 경제학자들의 공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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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는 경제정책에 직접 참여한 경제학자들 사이에 재미있는 논쟁이 벌어졌다.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부시 정권에서 2년 동안 수석 경제자문위원을 맡았던 그레그 멘큐였다. 그는 오바마 정권의 경제팀을 “케인즈 정신이 골수까지 박힌 인물들”이라고 규정했다. 케인즈 경제정책이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십년 넘게 지속된 경제난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가 일본과 독일에게 뒤지는 결과를 빚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멋진 공격이었다. 또한 당시의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한 것은 공화당 정권이었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그러나 멘큐의 이런 공격은 도덕적으로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먼저, 오바마 정권의 경제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규정한 것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데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경제는 자기 실현성이 매우 높으므로, 멘큐의 주장이 널리 믿어지면 경제위기의 탈출은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의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것도 부시 정권이었고, 금융위기가 오늘날처럼 심각하게 악화된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것도 부시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해소된 것은 공화당의 레이건 정권에서였지만, 그 주역을 맡았던 것은 민주당의 카터 정권이 FRB 의장으로 지명했던 폴 볼커였다. 볼커는 ‘물가 안정 없이는 성장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점을 내세워 통화 공급을 극단적으로 위축시켰다. 한 때 금리가 30%에 육박할 정도로 폭등하고 경기 침체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가가 충분히 안정됐다고 여겨질 때까지 금융 긴축을 끝내 유지했다. 그 결과 미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다시 살아났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과 독일을 다시 넘어설 수 있었다. 물론 1980년대 초의 심각한 경기 위축을 불렀던 그를 1987년까지 유임시킨 것은 레이건 정권이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경제적 성과를 공화당의 몫인 것처럼 내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멘큐의 위와 같은 공격에 대해 오바마 정권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인 크리스티나 로머는 더 멋지게 반격했다. 오바마 정권의 경제정책이 “대학원에서 읽거나 배운 학문적 지식보다는 경험적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멘큐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경제학 교과서를 집필한 경제학자라는 사실을 꼬집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인 멘큐가 부시 정권에 참여했지만, 결국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금융위기 및 경제난을 불렀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미국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위와 같은 공방을 지켜보노라면,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럽기 짝이 없다. 국내에서는 위와 같이 점잖지만 다의적이고 고급스러운 공방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공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주에 가깝고 극단적이며 직선적인 것들만 난무했을 따름이다. 경제정책에 참여하지 않은 경제학자들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경제정책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비판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상호 비판이나 논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제학자가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전개하거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주장을 하더라도, 이것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나는 국내 경제학계에서도 상호비판이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야 우리 경제학계의 발전도 가능할 것이 아닌가.
최 용 식(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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