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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도 금방 질려...역시 내겐 발레뿐
작성자 관리자

[인터뷰]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지젤>·<왕자호동> 주연 발레리나 이은원

지난 3월 중순 열린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에서는, 새 얼굴의 주연 발레리나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주인공 지젤역을 맡은 스무 살의 발레리나는 완성도 높은 연기를 펼치며, 관객의 시선이 집중된 무대에서 자신을 특별히 빛나게 했다.
알브레히트와의 슬픈 사랑을 간직한 지젤이 되어 높이 날아오른 그녀의 이름은 이은원(20). 스무살 발레리나의 이은원의 연기에선 불꽃 같은 열정과 특별한 행복이 엿보였다. 3월 31일 만난 그녀는 긴 부상을 극복한 자신의 삶의 궤적처럼, 밝게 웃고 있었다.


천재 발레 소녀, 강수진을 만나다
"발레를 처음 하게 된 계기요? 음... 어린 시절, 엄마와 호두까기인형을 봤던 것이 결정적이었죠. (웃음) 그 공연에 어린 유치원, 초등학생들이 예쁜 옷을 입고 출연했는데 저는 그게 무척 예뻐보여서 발레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이은원 발레리나는 자신과 발레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그 초심 덕분일까. 3월 <지젤> 공연을 마치고 4월 <왕자호동>(4월 22일, 23일 예술의 전당) 주연에 캐스팅된 그녀는 바쁜 연습 속에서도 밝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발레는 '행복한' 그 무엇처럼 보였다. 이은원은 어린 시절 발레를 계속한 원동력이 이 행복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년 시절, 제 인생의 대부분은 발레였어요. 수업 끝나고 바로 무용실에 갔기 때문에 일과는 집-학원-집-학원이었죠. 하지만 발레가 좋아, 이런 생활이 힘들지 않았어요."
예원학교(중학교)시절, 이은원은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 국제무용콩쿠르에서 15살의 나이로 주니어부문 최연소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국제 콩쿠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당시 특별 심사위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발레리나로 손꼽히는 강수진 발레리나였다. 열다섯 살 이은원과 강수진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콩쿠르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심사위원이 강수진 선생님인지도 몰랐어요. 나중에 결과가 나오고서야 알았죠.(웃음) 강수진 선생님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안무가예요. 선생님의 춤을 보면 발레가 너무 좋아지고, 발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춤도 아름답고 잘 추시지만, 그에 걸맞은 인격도 지니신 분이죠."


행복하지 않은 발레, 부상이 찾아오다
최고의 발레리나를 꿈꾼 이은원은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과감한 선택을 한다. 고등학교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을 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발레리나 생명력이 길지 못해요. 많아야 40살, 빠르면 30살에 은퇴를 하거든요. 전 발레가 너무 좋았기에,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발레단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하지만 남들보다 빠른 대학생활은, 이은원에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바로 외로움이었다. 주변 또래 친구가 없는 대학 생활은,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와 달리, 사춘기에 접어든 이은원은 새로운 세계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연일 계속되는 공연과 연습. 그녀의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리고 2008년 12월,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만큼, 치명적인 부상이 이은원에게 왔다.
"무리하게 공연, 연습을 소화하다가 무릎 쓸개골이 부러졌어요. 쉽게 말해 무릎팍이 부러진 것이죠. 보통 뼈는 3개월 정도 쉬면 알아서 치유가 되는데, 저는 그 상태에서 공연이 있어서 계속 움직였기 때문에 더욱 상태가 악화됐죠. 공연이 끝난 다음에 병원에 갔더니 뼈 붙을 시기가 지나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8개월을 쉬게 되었어요."
갑작스럽게 닥친 긴 부상, 오랫동안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은 꿈 많은 발레리나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일이었다.
깊은 좌절감에 빠진 이은원은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발레'와 점점 멀어져 갔다. 결국 그녀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부상때문에 발레를 그만 둔 8개월 동안 발레리나가 아닌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하는 발레리나 아가씨
그렇게 전도유망했던 발레리나는 연습실을 박차고 나와 커피숍아르바이트 생으로 변신한다. 돈이 궁했던 것은 아니다. 일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지쳤던 삶에서, '새로운 충전'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발레 동작을 연습하던 우아했던 손은, 라떼, 카푸치노등의 커피 주문을 받느라 정신 없었지만 그녀는 이런 소박한 일상이 재밌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는 환한 표정의 발레리나 아가씨는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신의 번호를 적어주는 손님들도 많았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일과 취미생활을 하며 그녀는 힘든 부상기간을 건넜다.

"(부상 기간 중)커피숍 아르바이트, 배낭여행, 그리고 미술을 전공하는 친언니랑 미술 작업실에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물론 발레에 관련된 것은 절대 그리지 않았죠.(웃음) 그런데 이상했어요. 처음엔 모든 일이 재밌었는데 금방 질리는 거예요."

이상한 일이었다. 어떤 재밌는 일을 해도, 어떤 즐거운 일을 해도, 즐겁게 발레를 했을 때 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발레가 자신의 운명과도 같다는 것을.
"'발레는 몇 년동안 쭉 해도, 늘 행복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아! 난 발레를 해야하는구나 라고."
그렇게 이은원은 8개월만에 다시 발레 무대로 돌아왔다. 멘토인 김선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의 지도아래, 수없는 연습을 반복했다.


고된 연습 끝,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인어공주>의 주연으로 발탁된 것이다. 첫 주연이 긴장될 법도 했지만, 이은원은 자신의 첫 주연을 완벽하고 아름답게 소화해냈다.
이은원의 재능을 높이 산 김선희 교수는, 그녀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다. 덕분에 이은원은 국립발레단 인턴 단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국립발레단에서 그녀 재능은 더욱 빛났다. 전 단원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돼, 주연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은원은 <호두까기인형>에서 고혹적인 연기로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그리고 이어진 <지젤>오디션에서 그녀는 국립발레단 최고의 발레리나로 손꼽히는 김주원, 김지영씨와 함께 지젤역에 캐스팅됐다.
"원래 <지젤>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미르타 역을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갑작스레 주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죠. 기분이 좋고 행복했어요. 다른 단원들도 진심으로 축하해줘서 정말 고마웠죠."
<지젤> 공연에서 이은원은 청순한 지젤과 몽환적 윌리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이같이 어려운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은원 발레리나는 자신만의 감성 충전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 행복한 <지젤>이 되어 날다
바로 고전영화보기다. 그녀는 신세대답지 않게, 고전영화인 <바람과함께사라지다>,<로마의휴일>, 그리고 오드리햅번의 영화를 즐겨본다고 한다. 고전 영화를 보면 '신나서 가슴이 벅찬다'는 이은원은 분명 순박한 '지젤'과 닮은 구석이 있어 보였다.
2011년 3월, 드디어 이은원은 행복한 지젤이 돼 무대 높이 날아올랏다. 그녀의 <지젤>은 많은 관객들에게 울림을 줬다. 스무살이란 어린 나이에, 주연을 맡은 화려한 이력 때문이 아니다. 열정, 긴 부상의 고통을 이겨내고 찾은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다.

무대가 끝나자, 교양 넘치는 발레 관객들은 새로운 신성 발레리나의 탄생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높이 날아오른 이은원에게, 강수진 발레리나는 특별한 조언을 전해줬다.

"2010년 발레 페스티벌에서 강수진 선생님을 뵐 수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동안 네가 추는 춤을 보면 콩쿠르 상 부담 때문인지 너무 잘해야지 하고 용을 쓰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즐기면서 춤을 추는 것 같다. 그렇게 천천히 차근차근 쌓아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힘이 났어요.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서요."
강수진의 조언에 이은원은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햇다. 세기의 발레리나가 애정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그 주인공 이은원을 행복한 발레리나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했다.

"어떤 발레리나로 남고 싶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항상 저에게 맡은 일을 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해서 테크닉에 치우치지 않고. 좋은 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저는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섬세한 것도 부족해요. 앞으로 가는 중이니까 조바심 날 때도 있겠죠. 하지만 30살 때는 좀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돼 있지 않을까요? 그때는 좀 더 많이 살았으니까 현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사제공: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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