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환율이 경기를 회복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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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식(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지금처럼 내수가 부진한 때에 수출마저 줄어든다면 심각한 경기후퇴를 피할 수 없다고 경제전문가들은 흔히 말한다. 지금의 경제상황에서는 고 환율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책당국도 이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한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경기부진이 발생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원인을 알아야 비로소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외면하고 대책을 세우면 사태를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건강 악화가 간 기능의 악화에 의해서 나타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열이 오른다고 해열제를 투약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진통제를 투약하면 간을 혹사시켜 건강을 더욱 크게 악화시킬 따름이다. 이 경우 건강을 회복시키는 지름길은 간 기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원인을 따지는 일은 이처럼 중요하다. 경기부진의 해법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경기부진은 수출부진 때문에 초래된 것이 결코 아니다. 수출증가율은 2008년 11월부터 계속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달러 기준의 증가율일 따름이다. 수출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달러 기준이 아니라 원화 기준이다. 원화 기준으로 수출증가율을 환산해보면, 올해 1월에만 설 연휴의 영향으로 5.4%가 감소했을 뿐, 두 자리 수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에는 수출 증가율이 10%만 넘기더라도 성장률은 7%를 넘겼으므로, 수출 부진이 경기부진을 불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무엇 때문에 국내 경기가 지금처럼 악화된 것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그것은 환율 상승 때문이었다. 2008년 연초 940원대였던 환율이 5월에는 1,000원을 넘어서고, 9월에는 1,100원을 넘어서자 자본수지가 대규모의 적자로 돌아섰다. 외국에서 돈을 빌려온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그만큼 환차손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외국인의 국내 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은 서둘러 외국 빚을 갚았고, 외국인은 국내 투자를 서둘러 회수해갔던 것이다.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섰던 2008년 10월에는 자본수지 적자가 248억 달러에 달했고, 11월에도 121억 달러에 달했을 정도였다. 2008년 전체의 자본수지 적자는 무려 509억 달러에 달했다. 그만큼의 국내 돈이 해외로 빠져나간 셈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은 극심한 신용경색을 겪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008년 자본수지 적자는 우리 돈으로는 약 56조원으로서, GDP의 약 6%에 달한다. 이 돈이 해외로 유출되었다는 것은 그만큼의 국내 소득이 해외로 이전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GDP의 6%에 달하는 국내소득이 해외로 이전된 셈이다. 이랬으니 국내 경기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환율 상승이 국내 경기의 부진을 부른 결정적인 원인인데, 고 환율을 유지하지 않으면 국내 경기가 하강한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오히려 고 환율은 국내 경기를 더욱 후퇴시킬 따름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의 자본수지 추이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안정세를 찾아가던 환율이 2월에 갑자기 폭등세를 보였다. 1월 말 1,380원에서 2월 말에는 1,534원까지 치솟았던 것이다. 그러자 1월에 51.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던 자본수지가 2월에는 33.2억 달러의 적자로 돌아섰다. 그만큼의 국내소득이 해외로 이전됨으로써 국내 경기를 다시 후퇴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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