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위기가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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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2일 주요 언론들은 정부가 ‘지난 3개월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왔던 ‘외환위기’가 사실상 끝났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외국인 순매도가 진정되는 등 여러 지표나 시장상황 등을 분석하면 외화유동성 위기는 지나갔다고 봐야 맞는 것 같다. 내년에도 외환 위기가 재연될 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는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 보도를 접하자마자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아니,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그 파장이 여간 걱정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환율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12월 22일에 19원이 올랐고, 23일에는 29원이 올라서 1,338원까지 치솟았다. 모처럼 안정되어가던 외환시장이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한 마디에 이처럼 크게 출렁거렸던 것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가 어떻게 함부로 이런 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수준이 기껏 이 정도란 말인가. 정책당국이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외환위기’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어찌 그리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위 정책당국자가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말하면 시장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금융시장에서 각종 위기설이 난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설마 또 외환위기까지 벌어졌겠는가를 반신반의하던 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고위관계자가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천명했으니, 우리 경제에 진짜로 외환위기가 발생했었다고 판단할 것이 빤했다. 그러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연히 우리 경제의 장래를 심각하게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위와 같은 환율 상승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더욱이 그 고위관계자는 “한·미, 한·중·일 통화 스와프(맞교환) 등으로 900억 달러의 외환 비상금을 확보하고, 시중에 550억 달러의 외화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정부의 여러 조치들이 시장의 안정을 가져오고 있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이것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만약 이런 ‘친절한’ 설명만 덧붙이지 않았더라도 상황이 그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장참여자들은 ‘외환위기가 왜 끝났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을 했을 것이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분석에 희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해 그처럼 비관적인 자세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중국 및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 안정에 거의 기여하지 못함으로써,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위대한 공적으로 내세웠던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뻔뻔한가를 이미 증명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을 내세워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했으니, 시장의 반응은 보나마나 빤한 것이었다.
다행히 24일부터는 주가지수가 약세인 가운데에서도 환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외환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여지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공명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는데, 그것을 무사히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점을 그는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참으로 한심하고 위험한 짓이었다. 발생하지도 않았던 외환위기가 마치 실제로 발생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 떠든 것부터가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정부 스스로 외환위기가 벌어졌던 것처럼 떠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말이다. 실제로 모처럼 안정되어가던 외환시장이 일시적으로 불안해지는 사태를 스스로 부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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